제작 과정과 정보
<가구야 공주 이야기>는 일본의 오랜 전래동화 '대나무꾼 이야기'를 각색한 작품으로 감독은 '타카하타 이사오'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 이후에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이다. 감독인 타카하타 이사오의 고집으로 굉장히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일이 진행되었는데, 때문에 작업 일정이 계속해서 뒤로 밀리게 되었다.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모두 선으로 표현하는 등 수작업의 느낌이 나는 방식을 표현의 콘셉트로 잡아서 스태프들이 엄청나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그동안의 노력과 시간에 비해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고집이 헛되지만은 않았는지 <가구야 공주 이야기>는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의 후보로 올랐고, 제67회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대나무에서 태어난 아이 <가구야 공주 이야기> 줄거리
옛날, 산속에서 대나무를 베어다 팔던 노부부가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숲 속에서 대나무를 베던 할아버지는 빛이 나는 대나무 하나를 발견한다. 갑자기 대나무 끝에서 죽순이 자라났고 그 속에는 손바닥 크기만 한 어린아이가 있었다. 노부부에게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하늘이 보내준 아이라 생각하고 작은 아이를 집으로 데려간다. 할머니가 아이를 받아 들자 손바닥만 했던 아이는 갑자기 갓난아이로 변했다. 아기는 대나무 죽순처럼 순식간에 자라 금세 기어 다니고, 걸어 다니더니 급기야 뛰어다니기까지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소녀가 되었다. 노부부는 소녀를 '공주'라고 부르며 아주 소중하게 키웠다. 공주는 동네 아이들과 산속을 뛰어다니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 뒤로도 계속 산속에서 대나무를 베던 할아버지는 대나무 속에서 귀한 비단이며 온갖 재물이 쏟아지자, 이를 공주를 귀한 아가씨로 키우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공주를 기품 있는 아가씨로 만들어서 지위가 높은 남자와 혼인시키는 것을 목표로 정한 할아버지는 곧장 수도로 이사 갈 계획을 세운다. 동네 아이들과 실컷 뛰어놀고 온 공주는 갑자기 수도로 가자는 노부부를 따라나선다. 갑작스러운 이사로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처음에는 수도의 큰 저택도 예쁜 비단옷도 다 좋고 신났던 공주지만, 고귀한 아가씨가 되기 위한 교육에 답답함과 힘겨움을 느낀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과 놀았던 산골 생활을 그리워한다. 초경이 시작되자 공주는 '빛이 난다'는 뜻의 '가구야'라는 이름을 받는다. 할아버지는 가구야를 사람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성대한 연회를 열지만, 정작 주인공인 가구야는 인형처럼 꾸며져서 아무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어야만 했다. 연회에 모인 귀족들이 할아버지와 자신을 조롱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문을 부수며 뛰쳐나가버린다. 겹겹이 입었던 옷들을 벗어던지며 온 힘을 다해 예전에 살았던 산골을 찾아가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 너무 지친 가구야는 눈 밭 위에 쓰러지고 만다. 눈을 떠보니 자신이 인형처럼 가만히 앉아있었던 연회장이었다.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은 가구야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고귀한 아가씨의 생활에 순응하기로 한다. 연회 이후 가구야의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지고, 높은 지위의 귀공자 5명이 청혼을 해온다. 혼인을 하기 싫었던 가구야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빗대었던 보물들을 가져오면 혼인을 하겠다는 거짓말을 한다. 그 보물들은 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즈음 가구야의 소문이 천황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천황은 직접 가구야를 만나러 저택을 방문한다. 천황은 가구야를 끌어안고, 두려움을 느낀 가구야는 순간적으로 달에게 데려가 달라고 빌게 된다. 사실 가구야는 달에 사는 천인으로 천인의 신분으로 지구에 사는 인간의 삶을 동경했기 때문에 그 벌로 지구로 내려오게 된 것이었다. 가구야는 뒤늦게 달로 가고 싶지 않다고 다시 빌었지만, 이미 보름달이 뜨는 밤에 데리러 오겠다는 응답을 받은 후였기 때문에 때가 늦어버렸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자신이 천인이라는 것과 곧 달에서 데리러 올 것이라는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할아버지는 딸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무사들을 고용하여 방어하지만, 천인들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천인들의 노랫소리에 모두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가구야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천인들은 가구야에게 '달의 날개옷'을 입혀 가구야의 모든 기억을 지워버린다. 지구에서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달로 돌아가는 가구야는 지구를 돌아보며 눈물을 흘린다.
맑은 수채화 느낌의 애니메이션
<가구야 공주 이야기>가 지브리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했을 때 무척 놀랐었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지브리 고유의 그림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선뜻 보고 싶지가 않았다. 알게 모르게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체에 너무 길들여져 있었나 보다. 아무튼 <가구야 공주 이야기>는 화려하고 정교한 애니메이션에 익숙했던 나에게는 생소하지만 그만큼 더 신선하게 느껴졌다. 단순하지만 아름다웠고, 맑고 부드러운 한 편의 수채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휘갈긴 것처럼 선이 거칠게 표현된 부분이 있었는데, 연회에서 희롱당한 가구야가 문을 부수고, 겹겹이 입었던 옷을 벗어던지면서 뛰어나갔을 때였다. 가구야의 분노와 어쩔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이 잘 드러나는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과 리뷰
할아버지는 가구야의 생각은 묻지도 않고, 독단적인 생각과 결정으로 결국 사랑하는 딸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틀에 가구야를 끼워 넣으려는 모습에 답답하고 화가 났다. 할머니 역시 수도에서의 생활이 가구야를 병들게 하고, 자신들에게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하는 일에 크게 반대하거나 막아서지 않았다. 할아버지 몰래 가구야를 산속의 시골 마을로 보내주는 등 가구야의 숨통이 트일 수 있게만 도와준다. 이런 모습이 그 시대의 부인들이 남편에게 순종하며 살았던 모습이었던 것 같다. 가구야가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취했지만, 할아버지가 한 일은 결코 자신의 부귀영화나 출세를 위한 게 아니었다. 소중한 딸이 귀한 아가씨가 되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야기의 후반에 지금껏 했던 일들이 결코 딸이 원하는 행복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할아버지 혼자서 결정을 내리기 전에, 가구야에게 어떻게 하면 행복하겠느냐고 한 번이라도 물어봐주었다면 사랑하는 딸을 뺏기지 않고, 계속 가구야와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픈 엔딩이었지만, 잔잔한 여운을 주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