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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 / 2022. 11. 22. 04:14

감정이 통제되는 세계 <이퀼리브리엄> 영화 줄거리 명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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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퀼리브리엄, 출처:네이버 이미지 캡처

<이퀼리브리엄> 줄거리

세계 3차 대전으로 수많은 인구가 사라지자 살아남은 사람들은 최고 지도자를 내세워 '리브리아'라는 통일된 정부를 세운다. 그들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야말로 폭력과 전쟁을 일으키는 원흉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감정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인간에게 '프로지움'을 주기적으로 주입시켜서 감정이 없는 로봇과도 같은 상태를 만든다. 그 결과 인류는 평화와 발전을 유지한다. 하지만 정부에 반기를 든 단체가 생겨난다. 이들은 프로지움을 거부하고 음악, 미술품 등 감정을 일으키는 물품을 몰래 소장하고 있었다. 정부는 이들을 '감정 유발자'라 이름 짓고, 이들은 물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물품들을 소탕하는 특수요원들의 조직 '그라마톤 클레릭'을 창설한다. 클레릭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을 가진 '존 프레스톤'. 존은 그의 오랜 파트너가 프로지움을 거부하고 감정을 가지게 되었음을 알자 망설임 없이 그를 처단한다. 어느 날 아침 존은 그날 필요한 프로지움을 실수로 깨뜨리게 된다. 새로운 프로지움을 배급받기 위해 공장으로 향하지만 반란군의 공격으로 공장이 파괴되면서 공급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같은 날, 감정 유발자 '메리 오브라이언'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녀의 집에는 금지 물품이 가득했다. 그 속에서 찾아낸 베토벤의 교향곡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존은 완전한 감정 유발자가 된 모습이었다. 이후 또 다른 감정 유발자를 소탕하는 과정에서 반란군들이 키우는 강아지들을 발견한다. 강아지 역시 감정을 유발하는 금지 생물이었기 때문에 모두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강아지 중 한 마리가 존에게로 도망을 쳤다. 감정이 생긴 존은 차마 강아지를 희생시킬 수 없어서 전염병 조사를 이유로 개를 데려간다. 이러한 존의 행동으로 그의 새로운 파트너 '브랜튼'의 의심을 사게 된다. 늦은 밤 인적이 드문 곳에서 강아지를 풀어주려다가 순찰 중이던 경찰에게 강아지를 숨겼다는 사실을 들키고 만다. 존은 최고의 요원답게 혼자서 모든 경찰을 물리친다. 그리고 예전에 자신이 하늘나라로 보낸 옛 파트너를 찾아가 뒤늦은 사과를 한다. 그의 유품 속에서 반란군에 대한 단서를 찾은 존은 반란군의 본거지로 향한다. 반란군 지도자 '유르겐'은 존에게 리브리아의 최고 지도자를 처단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존은 승낙한다. 메리 오브라이언의 선고일, 존은 그녀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이미 그녀의 처벌은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존은 감정 유발자였던 아내의 처벌을 자신이 선고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광장에 엎드려 통곡한다. 이미 파트너 브랜튼과 부의장의 의심을 받고 있었던 존은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그러나 존은 일전에 브랜튼과 자신의 무기를 교묘하게 바꿔치기했었고, 브랜튼을 배신자로 몰아 고발한다. 그 증거로 제시된 무기 역시 브랜튼의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끌려간다. 유르겐과 미리 짜 놓은 계획대로 반란군들은 모조리 체포되고 존은 그 공을 인정받아 최고 지도자를 만날 기회를 얻는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듯했다. 최고 지도자를 만나기 전 진행된 감정 테스트에서 벌을 받은 줄 알았던 브랜튼이 나타나고 그래프는 존의 놀란 감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고의 클레릭 존은 최고 지도자를 벌하고 계획을 무사히 성공시킬 수 있을까?

 

 

 

 

영화 속 최고의 명장면

<이퀼리브리엄>은 세계대전 이후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목 하에 인간의 모든 감정과 개성을 없애버리고 통제하는 획일화된 미래사회를 표현했다는 점이 흥미로운 영화였다. 하지만 인간성이 결여된 건조한 삶만이 계속되는 사회에 과연 미래의 희망이 존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됐다.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존이 바깥세상이 보이지 않게 가려놓았던 블라인드를 찢고 밖을 바라보던 장면이었다. 비가 내려 반짝이는 유리를 통해 무지개와 석양을 바라보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손가락으로 창문을 더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파트너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하늘나라로 보냈던 존이었다. 그랬던 그가 노을이 지는 창밖의 풍경과 베토벤의 교향곡에 감동을 받아서 눈물을 흘렸다. 평생 감정을 강제적으로 억압당한 채 살다가 한순간에 모든 감정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잘 표현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은 반전이 있었는데, 존 프레스톤의 아이들이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부터 이미 프로지움을 거부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아빠보다 더 냉철한 모습을 보여줬던 아이들이 프로지움 없이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감추면서 살아온 것이다. 어린아이들까지 감정을 억압해야 하는 세상이라니 마음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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