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한 집착과 비극
16세기 루마니아의 대귀족으로 태어난 바토리 에르제베트.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진 정혼자와 사랑 없는 결혼을 하지만, 남편은 전쟁에만 관심을 있었다. 전쟁영웅이었던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그녀는 남편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아 관리하게 된다. 그 후 에르제베트는 그녀의 재산을 노리는 여러 귀족들로부터 적대감과 시기를 받고 고립적인 생활을 한다. 어느 파티에서 만나 20살 어린 젊고 잘생긴 귀족 청년 이스트반을 만난 백작부인은 생에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바토리 백작부인과 대립관계에 있는 투르조 백작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상관이 없을 만큼 그녀는 점점 어린 연인에게 빠져들게 되었다. 그로 인해 백작부인은 자신의 늙어가는 외모에 집착이 생기게 되었고, 이것에 더해 두 사람이 연인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 투르조 백작이 아들 이스트반을 가둬버린다. 연인의 편지를 전전긍긍하며 기다리던 백작부인은 이스트반이 어리고 예쁜 여자와 결혼했다는 거짓 편지를 받고 슬픔에 빠진다. 이스트반이 떠난 이유가 자신의 늙어가는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 백작부인은 예민하고 폭력적인 성격으로 변해간다.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의 머리를 빗겨주던 하녀가 실수를 하자 그녀를 심하게 때렸고, 하녀의 피가 백작부인의 얼굴에 튀어버린다. 피를 닦아내자 자신의 피부가 젊어졌다는 착각을 하게 되고, 자신이 다시 젊어지는 방법은 처녀의 피밖에 없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하녀들에게서 조금씩 뽑아내던 피를 '아이언 메이든'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피를 대량으로 뽑아내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성 안에 더 이상 처녀인 하녀가 남아있지 않게 되자 성 밖에서 하층민 소녀들을 데려온다. 하지만 이 마저도 여의치 않자 귀족 처녀들까지 데려와 피를 모은다. 백작부인은 처녀들이 흘린 피로 얼굴과 몸을 씻는 엽기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백작부인의 성으로 갔던 젊은 여성들이 돌아오지 않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그녀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서 주시하고 있던 투르조 백작은 진상조사를 위해 아들 이스트반을 백작부인의 성에 잠입시킨다. 5년 만에 연인을 다시 만난 백작부인은 그제야 투르조 백작이 거짓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성 안의 곳곳을 조사하면서 피를 얻기 위해 사용했던 도구와 방치했던 젊은 여성들이 발견되고 백작부인의 범죄가 밝혀진다. 범죄에 가담한 하인들에게는 목숨을 앗아가는 벌이 내려지고, 귀족인 백작부인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 갇히는 금고형을 받는다. 백작부인은 창문을 막아놓은 틈 사이로 들어오는 작은 빛에 의지하다 생을 마감한다.
바토리 에르제베트를 향한 음모
영화 <카운테스>의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실존했던 인물이다. 앞서 소개했던 애니메이션 <뱀파이어 헌터 D>에서 카밀라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백작부인의 '바토리'가문은 트란실바니아의 공작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많은 왕족, 대귀족들과도 혈연으로 연결이 되어있었다. 유럽 제일의 명문 합스부르크 왕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유명한 명문가였다. 그렇게 강력한 가문을 배경으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성을 따르는 보통의 여성들과는 다르게 백작부인은 가문의 이름인 '바토리'를 계속 유지했다고 한다. 백작부인은 엄청난 재력도 가지고 있었는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헝가리의 왕인 마티아스와 여러 영주들은 그녀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마티아스가 백작부인의 남편을 독살했다는 소문도 있다. 16세기는 비록 귀족이지만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약했던 시대였다. 그리고 무고한 사람을 마녀로 몰아 벌을 하는 마녀사냥이 성행하고 있었다. 엄청난 재력과 권력을 가졌지만 남편이 없는 백작부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음모가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실제 재판의 증거가 되었던 희생자들에 대해 기록했다는 일기는 아직까지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백작부인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서 사건이 부풀려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카운테스> 리뷰
영화 <카운테스>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위해서 처녀들을 무자비하게 해하는 '피의 백작부인'이 아닌 한 여자인 '바토리 에르제베트'의 일생을 다루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가 흩뿌려지는 잔인한 장면 대신에 백작부인이 어째서 그런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심리적인 묘사가 적절하게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바토리 백작부인 역인 줄리 델피가 동시에 감독을 맡았기 때문에 여성의 마음을 더 잘 표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백작부인이 일관된 무표정이 아닌 조금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화 속 바토리 백작부인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사방이 막혀있는 독방에 갇혀서 신께 기도하며 흐느끼는 장면에서는 왠지 모를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