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카테고리 없음 / / 2022. 11. 17. 03:06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영화 정보 루머 루이 16세

반응형

마리 앙투아네트, 출처:네이버 이미지 캡처

눈이 즐거운 영화 정보

2006년 개봉한 <마리 앙투아네트>는 미국, 프랑스, 일본 세 나라의 합작 영화로 소피아 코폴라가 감독을, 커스틴 던스트가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당시 프랑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보여주듯 먹기가 아까울 만큼 예쁜 디저트와 마카롱 같이 화려한 드레스를 보여준다. 특히 분홍색의 여성 드레스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 당시에는 분홍색과 같은 붉은색 계열은 남성적인 색상으로 여겨져 남성들의 의복에 많이 사용되었고, 반면 여성들은 차분해 보이는 푸른색 계열의 드레스를 자주 착용했다고 한다. 18세기 프랑스 시대극임에도 당시에 유행하던 색색의 여성 구두 사이에 컨버스화가 등장한다. 이것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직 철없는 10대 소녀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코폴라 감독과 의상감독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장면이라고 한다.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력이 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의상상을 수상했다. 실제 프랑스 베르사유궁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했기 때문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을 감상할 수 있는 눈이 즐거운 영화다.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일생

적대관계였던 프랑스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두나라의 국경에서 오스트리아에서 입고 가져온 모든 것을 돌려보내고 프랑스의 것으로 바꿔 입는다. 오직 혼자의 몸으로 프랑스의 황태자비가 되어 걸음을 내디뎌야 되는 것이다. 훗날 루이 16세가 될 루이 오귀스트는 루이 15세와 함께 마리 앙투아네트를 마중 나온다. 약혼자를 처음 본 그녀는 그의 소심하고 내성적인 모습에 실망한다. 그녀는 자유로운 오스트리아에서의 생활과는 전혀 다른 프랑스 궁전의 예법이 무척이나 낯설었다. 부부의 합궁조차 확인하려 드는 사람들과 옷을 갈아입는 것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치러야 될 의식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남편인 루이 16세의 무관심이었다. 사냥으로 밖으로 나가기 일쑤였고, 대장간에서 자물쇠 만드는 취미에 빠져 그녀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매일 같이 식탁에 앉지만 서로 대화 없이 묵묵히 식사만 할 뿐이었다. 매달 어머니로부터 오는 편지에는 두 나라의 더욱 돈독한 관계를 위해 어서 빨리 아들을 낳으라는 독촉뿐이다. 설상가상으로 루이 16세의 사촌 부인이 먼저 아이를 출산하게 되고 왕궁 사람들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험담을 한다. 사람들 앞에서는 의연하게 행동했지만 혼자가 되자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압박감에 무너져버린다. 심한 우울증에 빠진 그녀는 무도회와 도박 등 사치스러운 생활에 빠지지만 그런 것들이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 무렵 루이 15세가 천연두로 생명을 잃고, 루이 16세는 갑작스럽게 왕위를 이어받는다. 왕비로서의 의무감은 더 커지고 그녀는 더한 사치에 빠진다.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첫째 딸을 출산한다. 자녀가 생기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멀리하면서 그녀는 베르사유에서 떨어진 트리아농 궁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소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미국의 파병 요청과 왕족, 귀족들의 사치로 인해 프랑스 왕궁은 이미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국민들은 결국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고 프랑스혁명이 발발한다.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 16세와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노을이 지는 화려한 베르사유 궁을 떠난다.

 

 

 

 

그녀에 대한 루머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는 말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말이 아니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인다는 말이 있듯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명예를 깎아내리기 위해 혁명군들이 악의적으로 만들어 퍼트렸다고 한다. 또한 그녀가 사치를 일삼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역대 프랑스 왕비들에 비해 자신 앞으로 배정된 예산의 10%도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아주 검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국민들이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는데도 그 귀하다는 밀가루를 얼굴과 머리에 마구 뿌려댔으니 말이다. 귀족과 왕족들이 만들어놓은 유행을 따랐을 뿐이지만 이미 프랑스의 재정이 바닥난 상태에서 국민들에게 미움을 받는 왕비가 무엇을 해도 사치를 부린다고 보였을 것이다.

루이 16세의 사랑

역대 프랑스의 국왕들은 왕비 외에도 여러 명의 여성을 곁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국민들은 왕궁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그 여성들의 탓으로 돌렸다고 한다. 하지만 루이 16세는 오로지 마리 앙투아네트, 자신의 왕비만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했다. 그녀가 왕비로서의 의무를 내버려 두고 트리아농 궁에서 지낼 때도 간간이 직접 찾아가 이제 그만 돌아와 달라고 다정하게 타일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루이 16세의 사랑이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는 독이 되고 말았다. 왕의 곁에 있는 여성에게로 향했을 비난의 화살이 모두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로 향해 수많은 억측과 비난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반응형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